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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졸업 후, 공백 기간 없이 바로 첫 번째 인턴십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학교에서 글로만 배웠던 것들을 직접 경험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아주 들떠있었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딱히 배우는 것 없이 하루하루가 무생산적인 날의 반복이었어요. 과정이 깔끔하진 않았지만, 인턴을 하던 중 다른 회사와 인터뷰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인터뷰도 잘 풀려 그 자리에서 바로 두 번 째 인턴 기회를 확정받을 수 있었어요.


   두 번째로 인턴십을 진행하게 된 회사는 이전 회사보다 규모가 크고 직원 수도 많았어요. Machining 65%, Welding 25% 그리고 Millwright(Kind of?)가 10% 정도의 비중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Oil&Gas 회사의 주문을 받아 중대형 파이프와 관련 구조물을 만들어 내는 게 주업무였어요.


   CEO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회사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데 뭐든 일을 하며 배우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했고, 그 대답으로 이 회사에서는 바쁘게 움직이게 될 거고 용접도 배울 기회가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어요.


   내 사수는 회사에서 20년 이상 일하며 Machining과 Welding 파트를 지원하고 그 외 잡다한 기계와 모터, 펌프가 관여된 일을 하는 일종의 Millwright 포지션의 Journeyman이었어요.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업무를 Millwright라 부를 순 없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다양한 Trade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첫 주는 사수를 따라다니면서 안전 교육을 받은 뒤, 용접이 끝난 파이프에 블루프린트를 참고해 레이아웃을 그리고 구멍을 뚫는 작업을 했어요. 몇 주 만에 드디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정말 기뻤지만, 이 기쁨도 오래가진 않았어요. 앞에서 언급했듯 내 사수의 주 업무는 Machining과 Welding 파트를 지원하는 일이기에 고정적인 업무가 없었고 두 파트에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땐 스스로 무언가 할만한 일을 찾아야만 했어요.


   내 사수는 일이 없을 땐 쉬핑 파트를 도와 지게차를 운행하거나 완성된 제품을 배달했어요. 그때마다 혼자 남겨진 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청소뿐이라,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거나 휴지통을 비우곤 했어요. 이런 상황이 오래가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는데, 돌이켜보면 6주간의 인턴 기간 중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건 빗자루와 쓰레기통이었어요.


캘거리, 두 번째 어프랜티스 인턴십 기회 _ 실망스러운 CCIS 프로그램


   가끔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오래된 모터를 청소하는 일을 하긴 했지만, 길어야 2~3일 안에 끝나는 작업이었고 사수도 내게 무얼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며, "Nobody complains to you when sweeping."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본인의 일을 하러 떠났어요. 혼자 남겨져 바닥을 쓸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생각하다 보니 씁쓸함과 허무함이 몰려왔어요.


   출근 후 8시간 동안 쓸고 닦아도 여전히 더럽기만 하던 회사도 몇 주간 매일 청소하다 보니 1~2시간이면 어느 정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어요. 이게 마냥 좋은 상황만은 아닌 게 남은 6시간 동안은 무얼 해야 할지 스스로 찾아 해매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나마 청소를 하면서도 내가 돕거나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있는지 다른 파트 슈퍼바이저에게 물어보고 다닌 덕에 가끔 청소 외의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아무런 요청이 없는 날은 혼자서 어떻게든 5~6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일이 없어도 집에 갈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에서 또다시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유급 인턴이었더라면, 어떻게든 일을 시키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루는 사수에게 무얼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더니, Machining 파트에 가서 Machinist들이 파이프를 깎으면서 나온 Chip(파편)을 청소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요. 어떻게든 인턴 기간은 채워야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청소라도 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청소를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Machining 파트 근무자들은 자신들의 업무 중 하나인 청소를 하지 않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몇몇은 정말 고맙다고 말이라도 좋게 해주었지만, 나머지는 마치 내가 청소해주는 게 당연한 듯 행동했어요.


   나만 이런 인턴 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져 함께 수업을 들었던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니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어요. 대부분 일이 없어 빈둥거리고 있으며, 인턴십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어떤 친구는 Boss가 말하길 My에게 자신이 CCIS 프로그램을 통해 돈을 받고 있으니 회사입장에서는 월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어요. 또한, My에게 인턴십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던 사람은 나 말고도 더 있었지만, 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대답을 들었고 결국은 변화 없이 8주를 다 채워야 했어요.


   인턴을 하면서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어요. 나만 이런 상황에 놓인 게 아닌 걸 알게 된 후 My가 우리가 그렇게 무의미하다고 말하는데도 왜 이렇게 인턴십에 집착하는지 생각해보았어요. 추측해보자면, 정부의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니 매번 성과를 보고해야 하고 인턴십 과정도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으니, 학생들이 아무리 불만을 가져도 My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우리가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잡아두려고 했던 것 같아요. 또한 어떻게든 모든 학생이 바로 인턴십을 시작하게 만들기 위해 인턴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회사라도 일단 보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조금은 부정적인 생각도 해보았어요. My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8주간의 인턴십을 마친 후 든 생각은 물론 배운 것도 있었지만, 배운 것에 비해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다는 점이었어요.


   그동안 CCIS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배운 것과 받은 게 많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 과정은 엉망진창이었어도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어 버텨냈지만, 이런 상황에 화가 나서 중간에 인턴십을 그만둔 친구나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고 My와 연락조차 끊어버린 친구들도 있었어요. 평소 같으면 책임감 없다며 비판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 친구들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런 식의 프로그램 운영 방식과 다음 포스팅에서 적을 My의 충격적인 행동 때문에, CCIS 프로그램에 대한 내 생각도 아주 많이 바뀌게 되었는데, 만약 주변에서 이 프로그램을 신청할 생각이라고 말한다면, 예전엔 무조건 신청하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본 후,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권유할 것 같아요.


   다음 포스팅에서는 CCIS 프로그램 졸업식과 이 과정에서 발생한 황당한 사건에 대해 적어보도록 할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카테고리 안내

   "Industrial Mechanic Training" 카테고리에 포함된 글은 CCIS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배우고 들은 내용을 한 번 더 복습하기 위해 작성하고 있습니다. 아직 배우는 단계이므로 이 글에 적힌 내용과 사실이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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