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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할 남자의 개인적인 생각 - 두 번째 그림에 앞서서

  꽃다운 나이에 2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을 반강제적으로 빼앗겨버리는 대한민국 군대 시스템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입대 당시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제대할 즈음에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인생에서 끝은 없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대학생 새내기 시절, 수능을 마쳤다는 홀가분함에 취해 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엔 잘만 미루던 성격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입대 지원만큼은 재빠르게 마쳤고 신체검사, 지원,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마치고 동기 중에선 가장 먼저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지원할 때는 '남자라면 가야지!'하는 호기로움으로 거침없이 진행했지만, 막상 입영 날짜가 잡히니 '2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하는 막연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입대 당일, 두발 단속이 심했던 고등학생 때보다도 짧은 머리를 한 채 배웅 와준 가족을 뒤로하고 예비군인 무리 속으로 걸어갔습니다. 아침만 하더라도 오늘부터 군인 신분이 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지만, 가족의 품을 떠나 무리에 섞여 있으니 '이제 시작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오묘한 감정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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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할 남자의 개인적인 생각 - 두 번째 그림에 앞서서


" 반드시 뭐라도 하나 얻어 가자! "


   군대는 사회와 단절된 집단으로 특수한 신분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에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행동에 제약이 많은 게 내겐 오히려 도움이 되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나와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군대에 오기 전에도 한 번씩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미루고 미루다 보니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도화지는 여전히 백지상태였고 어떻게 그리기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막막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유 시간이 많았던 군대 생활에 읽지 않던 책을 읽기 시작하고 함께 근무하는 선, 후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어떻게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완성된 밑그림을 채색해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톡톡 튀는 특이한 방법으로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보다 보니 문득 하얗게 텅 비어있는 내 도화지가 부끄러워졌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충분했기에 복무하는 동안 채색까진 못하더라도 밑그림은 충분히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화지를 채워보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 그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아갈지 자신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비록 한 번도 진지하겐 손댄 적 없던 도화지였지만 어느 누구도 보채는 사람이 없었기에 여유롭게 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간혹 어떻게 그려 나가야할 지몰라 망설일 때도 주변 사람들과 수많은 책의 도움으로 이내 다시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 자연스레 계급이 올라가면서 시간이라는 연필을 사용할 기회가 더욱 늘어났고 제대할 즈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도화지에 희망과 목표로 가득 찬 밑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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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있어야 삶이 즐거워진다


" 목표가 있어야 비로소 삶이 즐거워진다. "


   제대 후 자유로운 신분이 되자 군대에 있을 때보다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습니다. 가령 군대에선 밑그림용 연필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색연필, 크레파스, 물감 등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밑그림에 색을 입힐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허겁지겁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막상 칠하고 나니 생각보다 별로였던 것도 있었지만, 예상대로 멋지게 보이는 것이 생기면 그 쾌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빈도화지를 가지고 살아갈 때는 주변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내 도화지를 근사하게 꾸미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약 4년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그린 밑그림을 채색하며 보냈고, 완벽하진 않아도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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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밑그림 그리기


" 다시 연필을 집어 들 차례 "


   첫 번째 그림을 완성한 후, 성취감에 취해 한동안 여유롭게 지내오다가 며칠 전 두 번째 그림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개월 뒤 다시 일자리에 뛰어들면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므로 비교적 시간의 여유가 있는 지금이 밑그림을 위한 최적의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그림이 나만을 위한 그림이었다면 두 번째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한 준비과정을 담은 그림을 그릴 계획입니다. 혼자만의 그림이 아니므로 더 세심하게 연필을 움직여야겠습니다.



훗날의 행복한 나와 카야 그리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2세의 모습을 상상하며.


2016.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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