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위니펙으로 가는 비행기가 아침 일찍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전날 진영이와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다 숙소에 들어와서 잠깐 눈을 붙인 게 다였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국내선은 셀프 체크인도 가능해서 맡겨 두었던 짐을 찾은 뒤 서둘러 티케팅 했다. 티케팅 후 수하물을 붙이러 갔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인천공항에선 문제없이 통과되었던 Kaya의 이민 가방이 무게 초과로 걸린 것이다. 부랴부랴 Kaya의 가방에서 내 가방으로 이것저것 짐을 옮기고, 기내에 들고 갈 수 있는 것들은 꺼냈는데도 여전히 1kg 정도가 초과 되었다. Kaya와 뭘 버려야 하나.. 하며 고민에 휩싸여 있었는데 다행히 검사관이 1..
먹고자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밴쿠버 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밴쿠버까지는 에어 캐나다를 타고 갔는데, 2명의 캐네디언 승무원과 1명의 교포 2세 승무원이 서비스를 해 주었다. 캐나다 국적 비행기이다보니 기본적인 서비스는 영어로 제공되었고, 중요한 안내메세지는 영어와 불어, 한국어로 방송되었다. 밴쿠버에 내려 가장 먼저 한 일은 입국 심사받기 였다. 캐나다에 오기전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했지만, 이민관의 실수? 혹은 재량으로 1년 미만의 비자를 받은 케이스를 들었기 때문에 정신 바짝차리고 심사에 응했었다. 더욱이 영어를 잘하지 않기 때문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위해 많이 긴장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심사관 : 안녕하세요?나 : 안녕하세요? 심사관 : 서류를 볼 수 있을까요?나 : 네, 여..
나는 정이 많은 남자다. 특히나 가족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타지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해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이후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도 타지에서 직업을 구해 생활 하였다. 그 도중 캐나다 워홀에 합격하여, 지금의 위니펙에 살고 있다. 물론 타지에서 생활하면서도 빈번히 부모님을 찾아뵙고 함께 활동도 하였지만, 성인이 된 후,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을 계산해보면 1년이 채 안되는 것 같다. 사실 함께 한다고 하여 모범적인 아들처럼 말을 잘 들었던건 아니지만, 떨어져 살다보면 항상 부모님의 익숙한 목소리와 따뜻한 품이 그립다. 나와 Kaya는 2014년 12월 11일에 밴쿠버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서 바로 위니펙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기 때문에 경유해서 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