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위니펙으로 가는 비행기가 아침 일찍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전날 진영이와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다 숙소에 들어와서 잠깐 눈을 붙인 게 다였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국내선은 셀프 체크인도 가능해서 맡겨 두었던 짐을 찾은 뒤 서둘러 티케팅 했다. 티케팅 후 수하물을 붙이러 갔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인천공항에선 문제없이 통과되었던 Kaya의 이민 가방이 무게 초과로 걸린 것이다. 부랴부랴 Kaya의 가방에서 내 가방으로 이것저것 짐을 옮기고, 기내에 들고 갈 수 있는 것들은 꺼냈는데도 여전히 1kg 정도가 초과 되었다. Kaya와 뭘 버려야 하나.. 하며 고민에 휩싸여 있었는데 다행히 검사관이 1..
기다리던 스타벅스 트레이닝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매장에 도착하니 내 인터뷰를 봤던 SM (스토어 매니저) 미셸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미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녀를 따라 백룸으로 가니 함께 트레이닝 받을 밴이라며 한 남자를 소개해 주었다. 밴과도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10시가 되자 본격적인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스타벅스에서 일했었던 여러 블로거의 경험담으론 첫날은 여러 가지 서류 작업을 하는데 시간을 거의 다 쓰게 된다고 했는데, 미셸은 트레이닝 시작 전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내게 메일로 물어보며 이미 서류 작업을 끝마쳐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나와 밴은 많은 사람이 지루해한다는 서류작업(파트너 등록 등)을 피할 수 있었다. 미셸이 급하게 일이 생겨 잠시 다른 매장에 다녀올 동안 스타벅스에서 자체..
캐나다에 도착한 후 습관적으로 하던 것 중 하나가 스타벅스 온라인 지원이었다. 만약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이 온라인 지원 폼 작성인데, 그 이유는 스타벅스는 직원 고용 시 오프라인 지원은 따로 받지 않고 온라인 지원만 받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제도를 떠나서 스타벅스의 일자리는 쉽게 공석이 생기지 않기로 유명하다. 설령 공석이 생겼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수많은 경쟁자가 몰리기 때문에 그들 중 한 명으로 선택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유를 갖고, 언젠간 하나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습관처럼 꾸준히 지원하는 걸 추천한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내가 제출한 온라인 지원서가 여러 매장에서 일정 횟수 이상 조회되면 한동안 락(Lock)이 걸려 매니저가 ..
고용된 후 3일간의 트레이닝을 받고 8월부터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인테리어가 카페라기보다는 레스토랑에 가까웠는데, 기존에 있던 레스토랑을 인수해 최소한의 리노베이션만 한 후 다시 오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페 시스템도 일반적인 카페와는 달랐는데, 손님과 바리스타 사이에 서버를 두고, 서버가 주문을 받아오면 바리스타는 커피만 만드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주로 이탈리안 스타일 커피와 여러 종류의 티 그리고 샌드위치를 판매했고, 스페셜 메뉴로는 사이폰 커피와 하이티를 판매했다. 사이폰 커피 (퍼콜레이터 커피) 사이폰 커피는 커피 추출 도구를 이용해 만드는 커피로, 물이 담긴 아래쪽 플라스크와 커피 가루가 있는 위쪽 플라스크를 밀착 연결한후, 아래쪽 플라스크를 가열하면, 진공 상태에서 물이 증발하..
7월 무렵이 되어서는 세차장에서 받는 쉬프트가 30시간보다 훨씬 밑도는 정도만 주어졌다. 남은 비자 기간이 6개월 보다 적었기 때문에 지금 이직한다면 사실상 난 영주권을 얻기 위한 도전에서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MPNP를 신청하기 위해선 6개월 이상 Full-time Worker로 근무해야 한다. 참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Kaya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을 졸업하면 나도 함께 Work Permit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은 시간의 압박감에서부터 나를 조금 해방해 주었다. 나에겐 남은 비자 기간과 더불어 약 1년이라는 시간이 더 생긴 셈이었다. 다시 키지지와 인디드를 이용해 일자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여유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던 ..
레쥬메를 열심히 돌렸다면 인터뷰 보고 싶다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인터뷰 전화의 내용은 이렇다. 고용자 : Hello? Is this 큰일한남자? 나 : Hello! Yes, this is him 고용자 : Great, Nice to meet you. It's ★★(이름) calling from ★★(회사이름). I saw your reseme. 낸지 좀 지난 곳이 라면 고용자 : Are you still looking for a job? 나 : Yes, I am. 고용자 : Can you take an interview on Tuesday at 3? 나 : Yes, I can. or I think I can't. Could I be there on Friday? 고용자 : Do ..
레쥬메가 알차게 준비되었다면 다음 단계는 사정없이 마구마구 뿌리는 것이다. 레쥬메는 전혀 아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레쥬메를 넣는다고 해서 모든 곳에서 전화가 올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물론 인터뷰 전화가 쉴새 없이 울릴 수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내가 레쥬메에 전화번호를 잘못 기재했나? 싶을 정도로 잠잠할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당장 고용 계획이 없더라도 만약을 대비해 레쥬메를 받아두는 문화가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정말 글자 그대로 레쥬메를 마구마구 뿌려 훗날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다. 지원하는 방법은 온라인 지원과 오프라인 지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빠른 구직을 위해 매니저가 주로 매장에 있는 오전~초저녁 시간까지는 발품을 팔아 오프라인으로 지원하고, 그 후 저녁 시간과..
고용과 채용의 원리는 캐나다와 한국 둘 다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분야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공고를 내고, 그 분야에 적합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원하면, 서로 간의 합의 후에 계약을 맺는 원리. 하지만 문화가 다른 두 나라에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직업을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구분하여 혜택을 다르게 주는 반면 캐나다에서는 직업을 파트타임잡과 풀타임잡으로 구분하고, 여기에서 Permanent Job(영구직)과 Temporary Job(임시직)으로 다시 구분한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대부분 회사에서 파트타이머와 풀타이머 모두에게 동등한 회사 복지혜택을 준다는 점이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은 캐나다에 오면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즉..
나는 2014년 12월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캐나다에 입국했다. 워홀러 대부분이 그렇듯 나 역시도 입국 전부터 어떤 일을 할지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는 제대 후 리조트에서 약 1년간 근무했었고, 카페에서도 역시 1년간 근무했었다. 사실 커피에 대해서라곤 믹스커피만 알고 20여 년을 살아왔는데, Kaya를 만난 후 주로 카페에서 데이트하며 커피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카페에서 일하면서 나의 커피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생겨났다. 커피에 대해 알아가면 갈수록 계속 흥미가 생겼고, 훗날 카페를 하겠다는 목표도 이때 생겼다. 그러므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내가 캐나다에 가면 가장 하고 싶은 일 역시 카페 일이었다. 한국과 다른 커피 문화를 더 체험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카페에서 일..
먹고자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밴쿠버 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밴쿠버까지는 에어 캐나다를 타고 갔는데, 2명의 캐네디언 승무원과 1명의 교포 2세 승무원이 서비스를 해 주었다. 캐나다 국적 비행기이다보니 기본적인 서비스는 영어로 제공되었고, 중요한 안내메세지는 영어와 불어, 한국어로 방송되었다. 밴쿠버에 내려 가장 먼저 한 일은 입국 심사받기 였다. 캐나다에 오기전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입국했지만, 이민관의 실수? 혹은 재량으로 1년 미만의 비자를 받은 케이스를 들었기 때문에 정신 바짝차리고 심사에 응했었다. 더욱이 영어를 잘하지 않기 때문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위해 많이 긴장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심사관 : 안녕하세요?나 : 안녕하세요? 심사관 : 서류를 볼 수 있을까요?나 : 네, 여..
나는 정이 많은 남자다. 특히나 가족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타지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해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이후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도 타지에서 직업을 구해 생활 하였다. 그 도중 캐나다 워홀에 합격하여, 지금의 위니펙에 살고 있다. 물론 타지에서 생활하면서도 빈번히 부모님을 찾아뵙고 함께 활동도 하였지만, 성인이 된 후,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을 계산해보면 1년이 채 안되는 것 같다. 사실 함께 한다고 하여 모범적인 아들처럼 말을 잘 들었던건 아니지만, 떨어져 살다보면 항상 부모님의 익숙한 목소리와 따뜻한 품이 그립다. 나와 Kaya는 2014년 12월 11일에 밴쿠버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서 바로 위니펙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기 때문에 경유해서 가야 하는데..
모순적으로 들릴수도 있지만, 나는 변화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새로운 곳을 여행 하는 것은 좋아한다. 또한 새로운것에 도전하여 그것을 달성하면서 얻는 성취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사는 삶을 고려하며 살아왔다. 내가 말년병장 휴가를 나왔을때, 지금의 와이프가 된, Kaya를 만났다. 해외경험이 많았던 그녀로부터 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한국에서 몇 년간 교제하며,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컬리지에 입학하는 걸로 비자를 얻기로 하고, 나는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하기로 했다.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자격만 18~30 세의 대한민국의 시민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기간동안 유..
캐나다 위니펙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온지 어느덧 10개월이 지났다. 사실 위니펙에 도착하기 전부터 반드시 블로깅을 하며, 이곳에서의 추억을 간직하리라 하고 다짐했었는데, 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눈 깜짝할 새에 10개월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물론 이 기간동안 네이버 블로그에 한번씩 블로깅을 했었는데, 블로그가 일기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쓰지 않으면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었고, 일상 생활 속에서 새로운 것을 보거나 경험 했을때, 내가 체험하는 것보다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먼저 생각하고, 어떤식으로 써야할지 구상부터 하고있는 내 자신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 블로깅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블로그가 되어버려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눌렀었다. 이로부터 몇개월이 지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