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야가 퇴근할 때쯤에 맞춰 수제 햄버거를 만들어 놓고 든든히 배를 채운 뒤 간단한 장을 보러 나섰어요. 장 보러 가는 길에 근처 교회에 잠깐 들러 체육관을 점령하기로 했어요. (포켓몬 고) 그 교회는 포켓몬 고에선 체육관으로 설정되어 있기에 카야와 한번 씩 캐시를 모으기 위해 가는 곳이에요. 가는 도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미 그 체육관은 누군가에 의해 공격받고 있었어요.(체육관이 공격받으면 게임상 이미지가 바뀌어요) 교회로 향하면서 체육관을 때려 부수고 있는 분이 우리와 같은 편이면 좋겠다며 생각했어요. 우리가 도착할 때 즈음 상대 체육관은 거의 다 무너진 상태였고 우린 열심히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어요. 일단 아군인지 적군인지 파악하기 위해 그분의 시야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어요. 만..
위니펙 도착 후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한국에서 예약했었던 다운타운 근처 한인 숙박업소로 갔다. 예약할 당시 도착하면 따로 연락할 필요 없이 바로 숙소로 오면 된다고 했기에 연락을 하지 않고 바로 숙소로 향했었는데 도착한 후 아무리 문을 두드려봐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우리는 문앞에서 거의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추위와 싸우며 기다렸다. 12월의 위니펙 날씨는 대단히 추운 데다가 아직 제대로 된 겨울 코트도 없었던 우리에게 눈 덮인 위니펙의 겨울은 너무나도 춥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이제 막 도착한 직후라 휴대폰은 작동되지 않았고, 가득 담은 이민 가방이 각각 2개씩이나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이동하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또 다른 분이 외출 후 돌아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갈 ..
밴쿠버에서 위니펙으로 가는 비행기가 아침 일찍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전날 진영이와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다 숙소에 들어와서 잠깐 눈을 붙인 게 다였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국내선은 셀프 체크인도 가능해서 맡겨 두었던 짐을 찾은 뒤 서둘러 티케팅 했다. 티케팅 후 수하물을 붙이러 갔는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인천공항에선 문제없이 통과되었던 Kaya의 이민 가방이 무게 초과로 걸린 것이다. 부랴부랴 Kaya의 가방에서 내 가방으로 이것저것 짐을 옮기고, 기내에 들고 갈 수 있는 것들은 꺼냈는데도 여전히 1kg 정도가 초과 되었다. Kaya와 뭘 버려야 하나.. 하며 고민에 휩싸여 있었는데 다행히 검사관이 1..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경험을 하는 동안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훗날 이곳에서의 일이 몸에 벨 정도로 익숙해지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해지겠지만, 아직은 1시간이 마치 10분인 것처럼 금방 흘러가는 것 같다. 트레이닝 2주차에는 지난주에 배웠던 것들을 종합하여 실제로 파트너들과 함께 근무하며 익숙해지도록 경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트레이너는 내가 바 업무를 볼 때나 틸 업무를 볼 때 항상 곁에 파트너를 붙여주며, 실수가 있으면 잡아주고 모르는 것이 있어 물으면 다시 설명해 주도록 했다. 첫 2일간은 계속 바 업무만 보았는데, 아마도 영어에 약한 내가 바로 틸 업무를 보게 되면 패닉에 빠질까 봐 바에서 근무하면서 먼저 여러 메뉴에 익숙해지라는 뜻이 담긴 것 같았다. 스스로도 틸 업무가 상당히 부..
기다리던 스타벅스 트레이닝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매장에 도착하니 내 인터뷰를 봤던 SM (스토어 매니저) 미셸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미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녀를 따라 백룸으로 가니 함께 트레이닝 받을 밴이라며 한 남자를 소개해 주었다. 밴과도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10시가 되자 본격적인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스타벅스에서 일했었던 여러 블로거의 경험담으론 첫날은 여러 가지 서류 작업을 하는데 시간을 거의 다 쓰게 된다고 했는데, 미셸은 트레이닝 시작 전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내게 메일로 물어보며 이미 서류 작업을 끝마쳐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나와 밴은 많은 사람이 지루해한다는 서류작업(파트너 등록 등)을 피할 수 있었다. 미셸이 급하게 일이 생겨 잠시 다른 매장에 다녀올 동안 스타벅스에서 자체..
고용된 후 3일간의 트레이닝을 받고 8월부터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인테리어가 카페라기보다는 레스토랑에 가까웠는데, 기존에 있던 레스토랑을 인수해 최소한의 리노베이션만 한 후 다시 오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페 시스템도 일반적인 카페와는 달랐는데, 손님과 바리스타 사이에 서버를 두고, 서버가 주문을 받아오면 바리스타는 커피만 만드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주로 이탈리안 스타일 커피와 여러 종류의 티 그리고 샌드위치를 판매했고, 스페셜 메뉴로는 사이폰 커피와 하이티를 판매했다. 사이폰 커피 (퍼콜레이터 커피) 사이폰 커피는 커피 추출 도구를 이용해 만드는 커피로, 물이 담긴 아래쪽 플라스크와 커피 가루가 있는 위쪽 플라스크를 밀착 연결한후, 아래쪽 플라스크를 가열하면, 진공 상태에서 물이 증발하..
7월 무렵이 되어서는 세차장에서 받는 쉬프트가 30시간보다 훨씬 밑도는 정도만 주어졌다. 남은 비자 기간이 6개월 보다 적었기 때문에 지금 이직한다면 사실상 난 영주권을 얻기 위한 도전에서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MPNP를 신청하기 위해선 6개월 이상 Full-time Worker로 근무해야 한다. 참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Kaya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을 졸업하면 나도 함께 Work Permit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은 시간의 압박감에서부터 나를 조금 해방해 주었다. 나에겐 남은 비자 기간과 더불어 약 1년이라는 시간이 더 생긴 셈이었다. 다시 키지지와 인디드를 이용해 일자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여유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던 ..
구인광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올라올 때마다 꾸준히 지원했지만, 여전히 기대했던 만큼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간혹 오는 전화도 내게 영주권이 있는지 물어보곤 비자 기간 문제로 고용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끊어버렸다. 내게 남은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기에 계속 이렇게 낭비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재는 건 더는 사치였다. 어떻게든 구직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꿔야 했다. 이곳에서의 난 여러 제약이 걸려있는 외국인 노동자일 뿐, 내가 상상하던 그런 멋진 사람은 아니었다. 몸 쓰는 일도 지원하기 위해 레쥬메에 군대에 관련된 내용을 추가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인이라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한다는 걸 모르는 캐나다인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내용은 결정적으로 내가 첫 직..
키지지와 인디드 등을 이용해 꾸준히 일자리에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팀홀튼 이후로는 계속 휴대폰이 잠잠했다. 되도록 외국인과 함께 일하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싶었지만, 비자 문제로 시간 제약이 있는 내게 사사로운 것까지 모두 따지는 건 욕심이었다. 아쉬운 대로 위니펙 한인 사이트와 깻잎 나라 카페에 올라와 있는 한인 업체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한인을 상대로 구인광고를 낸 것이기 때문에 경쟁자가 적어 인터뷰도 쉽게 잡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 자유로워 부담이 덜했다. 광고를 보고 첫 번째로 전화 건 스시집의 사장님은 굉장히 무례하셨다. 나이를 떠나 초면에는 존댓말을 쓰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바로 말을 놓으시며 너 몇 살이냐?, 언제 왔냐?, 영..
호텔 인터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팀홀튼에서 전화가 왔다. 캐나다에서는 레쥬메를 내고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연락 온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레쥬메를 냈던 카페에서 연락이 오지 않아 대책으로 다른 곳에 레쥬메를 넣고 있던 내겐 정말 반가운 전화였다. 전화상으로 왜 팀홀튼에 지원했는지, 비자 기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그리고 팀홀튼에서 좋아하는 메뉴가 있는지 등을 묻는 간단한 1차 인터뷰를 봤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기를 쓰고 말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매니저는 내게 2차 인터뷰를 보자고 말했다. 2차 인터뷰는 팀홀튼 매장에서 진행되었다. 매니저 2명과 인터뷰를 봤는데, 그들은 내게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전공이 뭐였니?, 왜 그 전공을 선택했니?, 그 전공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줄래? 등..
며칠에 걸쳐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의 모든 카페에 지원했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전에 놓친 인터뷰 전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조금만 더 침착하게 받았더라면... 몇 마디라도 더 주고받을 수 있었더라면...' 위니펙의 겨울 시즌은 일자리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시간 제약이 있는 나로선 계속 카페 일만 고집할 수 없었다. 그래서 키지지에 들어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광고가 올라오면 꾸준히 지원했다. 또한, 인터뷰 전화를 다시 놓치지 않기 위해 인터넷에서 여러 상황별 영어전화 예문을 찾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위니펙 공항 근처의 한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매니저와 인터뷰 약속을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Kaya와 함께 인터뷰 연습을 했다. 인터뷰 ..
온라인 지원을 마친 다음 날 아침,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위니펙에 온 후 첫 인터뷰 전화이자, 내 생애 첫 영어 전화였다. 전화벨이 울리는 동안 '나는 할 수 있다! 까짓거 해보자!'라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받았지만, Hello 이후의 말들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음... 어..." 만 계속 반복했다.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렸고, 상대방은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내 머릿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내 첫 인터뷰 전화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까 너의 말이 너무 빨라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문자로 한 번 더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 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쉽지만 지..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처음 위니펙에 도착했을 때 내 영어 실력은 최하였다.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영어공부도 함께 해왔지만, 하루아침에 영어가 는다면...어느 누가 걱정하겠는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년뿐이었고, 카운트다운은 벌써 한 달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데 하루라도 낭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내 영어 실력을 걱정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라 생각했다. 지금부터는 몸으로 부딪쳐 경험할 시간이지 책과 함께 공부할 때는 아니었다. 나는 가장 먼저 구글맵을 이용해 내가 사는 곳 주변의 카페를 검색했다. 커피에 관심이 많아 카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두었기에, 다른 일자리에 지원하는 것보다는 먼저 카페에 지원해 보고 싶었다. 구인하지 않더라도 이력서..
2014년 12월 위니펙에 도착한 후 내 머릿속엔 항상 일자리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다. 생애 1번만 받을 수 있는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좋은 도시들을 뒤로 한 채 위니펙에 온 이유는 한가지다. 위니펙이 속해있는 매니토바주가 타 주보다 이민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최근 MPNP (매니토바주 주정부이민)의 정책이 개편되어 EOI 점수라는 항목이 추가되었지만, 6개월 이상 풀타임으로 근무하면 이민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는 데엔 변화가 없다. 즉, MPNP는 캐나다에 이민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Esplanade Riel Footbridge (Winnipeg) 하지만 간과하면 안될 점이 있는데, 이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이 나를 제외하고도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쉬운 이민 정책 때..
레쥬메를 열심히 돌렸다면 인터뷰 보고 싶다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인터뷰 전화의 내용은 이렇다. 고용자 : Hello? Is this 큰일한남자? 나 : Hello! Yes, this is him 고용자 : Great, Nice to meet you. It's ★★(이름) calling from ★★(회사이름). I saw your reseme. 낸지 좀 지난 곳이 라면 고용자 : Are you still looking for a job? 나 : Yes, I am. 고용자 : Can you take an interview on Tuesday at 3? 나 : Yes, I can. or I think I can't. Could I be there on Friday? 고용자 : Do ..